노먼 퍼시벨 록웰 (Norman Perceval Rockwell, 1894년2월 3일 - 1978년11월 8일)은 미국의 20세기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미국 중산층의 생활모습을 친근하고 인상적으로 묘사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의 표지 그림을 40년 넘게 그렸다. via 위키백과
지난 구글 차이나 중국 검색 시장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 후 구글 차이나 공식 블로그에서는 처음으로 이번 사태에 대해서 입을 열었는데, 주요 내용은 요즘 구글 차이나와 구글 직원에 대해서 각종 루머가 있는데 구글 차이나는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으며 구글 차이나 직원은 회사를 떠났지 않았고 사무실도 문을 닫지 않았으며 비록 구글 본사에서 앞으로 중국 정부와 협상을 할거지만, 구글 차이나는 여전히 고객들을 위해서 서비스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어제구글 차이나 중국 시장 퇴출 가능성 고려라는 글을 올렸는데, 오늘 제가 구독하고 있는블로그에서 이런 사진을 발견했네요..ㅠㅠ 참 씁슬합니다. 중국에 진출 한 인터넷 기업 중 구글처럼 중국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아온 기업은 없는 듯 합니다. 특히 Baidu와 비교할 때 구글 검색엔진은 기술 자료를 검색하는데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정말 구글이 중국 시장을 버린다면 저처럼 IT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슬플듯 합니다.
구글측이 화요일 블로그에서 밝힌 내용으로는 작년 12월 중순 중국측에서 구글 회사의 아키텍처에 공격하는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구글의
지적재산권이 도난당했다고 한다.
공격의 목표는 중국 인권 활동가의 Gmail계정에 로그인 하는것인데, 하지만 오직 두개의 지메일 계정에만 로그인했다고 한다.
구글 수석 법률 고문인 David Drummond가 작성한 이번 블로그 글은 이런 공격과 지난 1년여간 인터넷 언론 자유를 제한한 사건은
구글이 이런 결론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즉 구글은 다시금 중국 업무 운영의 가능성을 평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David Drummond은 구글은 이제 google.cn의 검색 결과를 검사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 정부와의 협상이
필요한데, 만약 협상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다면 Google.cn 서비스와 구글 차이나 사무실을 닫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참고로 구글은 검색 결과를 조사받는 조건하에 2006년에 중문 검색엔진인 Google.cn을 출시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구글 차이나는 여태껏 중국 정부의 감시를 받아왔다. 비록 현재 중국 검색 시장에서 30% 좌우의 검색시장을 차지했지만, 검색결과가 구글 보다 못한 Baidu의 시장 점유율보다는 현저히 낮은 편이다. 그리고 정부측에서는 정부의 말을 잘 듣는 Baidu를 선호하는 편이다. 요즘 중국 작가협회와의 협상도 순리롭지 못하다(지난 번 구글이 허락없이 중국 작가의 저서를 스캔한 사건이 있었다).
1926
년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가 주축이 되어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여 행사를 거행했고
1928년에 명칭을 '한글날'로 바꾸었다. 1932, 1933년에는 음력을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여 양력 10월 29일에 행사를
치렀으며, 1934~45년에는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8일에 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지금의 한글날은 1940년
〈훈민정음〉 원본을 발견하여 그 말문(末文)에 적힌 "正統十一年九月上澣"에 근거한 것으로, 이를 양력으로 환산해보면
1446년(세종 28) 10월 9일이므로 1945년에 10월 9일로 확정했다. 2005년 12월 8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어 국경일이 되었다. 이 날에는 세종문화상을 시상하고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英陵)을
참배하며 전국에서 학술대회 및 각종 백일장을 거행한다.
H.G.웰스
1866년 영국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발목을 다쳐 오랫동안 누워 있으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그후,
아버지는 잡화상을 운영하게 되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상업 학교에 잠시 다녔지만,
아버지가 불구자가 되면서 14세에 학교 공부를 접는다.
포목점의 점원, 화학 약품상의 보조 등 많은 직업을 전전하다가, 17살 때 미들허스트 그래머스쿨의 용원(소사)으로 일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런던 대학의 로얄 칼리지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후, 교사로 취직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27살 때, 폐결핵에 걸려 요양 생활을 하면서 작품을 발표해 과학소설 작가로 명성을 쌓았다. 데뷔작 <타임머신>을
비롯해, <모로 박사의 섬>, <투명 인간>, <우주 전쟁>, <달 세계 최초의
사람> 등을 발표하여 프랑스의 베르느와 함께 '세계 SF의 아버지'로 추장받고 있다.
<생명의 과학><인류의 노동과 부와 행복>등의 저서가 있다.
오늘 구글의 기념로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이라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두 번에 걸쳐 로고가 시리즈로 나갑니다(다음 번은 15일). 과연 누구를 기념한 로고일까요? 힌트라면, 미스터리, 투명, 소설 이라는 key word를 드리겠습니다. 한번 알아맞추어보시겠습니까? 좀 어렵습니다만 알고나면, "아하!"할 인물입니다. :-) - http://googlekoreablog.blogspot.com/
아침에 메일함을 열어보니, 좋은 소식 하나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구글 analytics 중국 유저한테 AdWords에서 사용할 350위안(약 6만4천원) 해당의 광고비를 지원한다는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신청했는데, 2일안에 전화 확인한 후 이 광고 금액을 AdWords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다름 아닌 여행 팀블로그인 qichengla를 홍보할 생각입니다.
중국 청소년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짱인 구글 차이나 President인 Kaifu Lee가 오늘 정식으로 구글을 사직하고 개인 창업을 시작하게 된다고 중국 포털인 163에서 보도했습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좀 충격적인 뉴스인데, 얼마전에만 해도 이 분이 쓴 책 -Be Your Personal Best라는 책을 보았는데, 정말 배울것이 많은 책인것 같습니다. 이 분은 대만에서 태어나고, 11살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하였으며,컬럼비아 대학에서 컴퓨터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상세내용 위키백과 참고) 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대학 동창이기도 합니다.
2005년에 구글에 입사해서 얼마 후 구글 차이나 사장을 맡고 중국에서 구글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등, 그동안 아주 큰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비록 중국 토종 검색사이트인 Baidu에서 검색 시장 점유율은 아직 뒤떨어졌지만, 여러 외국인터넷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면 망한다는 징커스를 깬 사례중 하나인것 같습니다.
리카이푸(Kaifu Lee)는 전에, 애플,SGI,마이크로소프트 등 유명한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습니다. 지어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후에 전화 와서 애플은 언제든지 다시 리카이푸를 환영한다는 메시지도 받은 적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구글에 입사할 때 상업 비밀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회사에서 리카이푸가 구글에 입사하는것을 반다하기 위해서 소송까지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중 리카이푸가 빌게이츠한테 사직할 때 한 한마디가 아주 유명합니다. I need to follow my heart!
정식 사직은 8월15일에 제출했고 오늘이 마지막 출근 일인데, 리카이푸가 사직한다고 하니, 구글의 한 고위층이 적지 않은 주식과 더 높은 직위로 만류했으나, 리카이푸는 이런 조건을 모두 거절하고 중국 젊은이와 함께 더욱 의의있는 일을 하겠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구글 중국의 중국에서의 발전상황을 보면 ,기술은 분명히 baidu보다 앞서있는데, 여러모로 순리롭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정부로부터 오는 압력 등등. 앞으로 구글 중국이 어떻게 발전이 될지 궁금해지네요.
아래는 구글 사이트에서의 Kaifu Lee에 대한 소개.
Kai-Fu Lee
Vice President, Google Inc.; President, Greater China
Kai-Fu joined Google in 2005 to develop the company's operations in
China, and now he heads the Greater China operation as its President.
From 1998 to 2005, Kai-Fu was at Microsoft as a corporate vice
president responsible for advanced natural language and user interface
technologies. He also founded Microsoft Research Asia, which has since
become one of the best research centers in the world. From 1996 to
1998, Kai-Fu was president of Cosmo Software, a subsidiary of Silicon
Graphics, Inc. (SGI). There he was responsible for several product
lines and the company's web strategy. Before joining SGI, Lee spent 6
years at Apple Computer, most recently as vice president of the
company's interactive media group, which developed QuickTime, QuickDraw
3D, QuickTime VR and PlainTalk speech technologies.
In addition, from 1988 to 1990 Kai-Fu was assistant professor at
Carnegie Mellon University, where he developed the world's first
speaker-independent continuous speech-recognition system. This system
was selected as the "Most Important Innovation of 1988" by BusinessWeek.
While at Carnegie Mellon, Kai-Fu also developed the computer program
that plays the game "Othello," which defeated the human world champion
in 1988.
Kai-Fu holds a Ph.D. in Computer Science from Carnegie Mellon
University and a B.S. in Computer Science with highest honors from
Columbia University. He is a Fellow of the IEEE.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