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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름 아닌 백남준 탄생 7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백남준(白南準, 영어:Nam June Paik, 1932년 7월 20일~2006년 1월 29일)은 대한민국 태생의 미국 현대 미술가이다. 여러가지 매체로 예술 활동을 하였다. 비디오 아트를 만들고 발전시켰다고 평가된다.

2000 년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받았다.

1932 년 7월 20일 경성부 서린동에서 아버지 백낙승과 어머니 조종희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백남준은 수송국민학교 경기보통중학교를 다니면서 피아니스트 신재덕에게 피아노 연주를, 작곡가 이건우에게 작곡을 각각 배웠다. 1949년 그는 홍콩 로이덴 스쿨로 전학했으며,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가족이 일본으로 이주했다. 그 후 일본으 로 건너간 그는 1952년 도쿄 대학교 문과부에 입학했다. 2년 후, 미학 및 미술사학 으로 전공을 정하고, 주로 작곡음악사를 공부했다. 졸업 논문은 <<아르놀트 쇤베르크 연구>>이다.

1956년 백남준은 독일 유학을 떠나 뮌헨 대학교쾰른 대학교 등에서 서양의 건축, 음악, 철학 등을 공부하였다. 뮌헨 대학교 입학 1년 후에는 프라이부르크 고등음악원으로 옮겨 볼프강 포르트너 교수에게 배우지만, 곧 현대음악의 실험이 활발하던 다름슈타트 하기 강좌에 참여했다. 1958년 그 곳에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 그의 자유로운 음악적 실행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1950년대 말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한 독일 라인 지역의 음악 퍼포먼스의 장에서 백남준은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앨런 카프로)라고 불릴 정도의 탁월한 퍼포머로 활약했다. 1959년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바이올린을 파괴하거나(바이올린 솔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버린 퍼포먼스(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가 특히 유명하다. 1961년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음악 퍼포먼스오리기날레에서 머리와 넥타이로 잉크를 묻혀 두루마리에 흔적을 남기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1960년대 초반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등을 만나 플럭서스 활동을 전개했다. 다다이즘에 영향을 받은 플럭서스는 헤라클레이투스가 주장한 '변화 생성의 흐름'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이벤트와 퍼포먼스 그리고 음악에 주력했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백남준은 슈토크하우젠이 중심이 된 쾰른의 WDR 전자음악 스튜디오에 출입했으며, 특히 레이더와 TV 작업에 몰두했던 독일 작가 칼 오토 괴츠의 영향을 받아 2년여 동안 홀로 TV 실험에 착수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자신의 첫 번째 전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열었으며, 13대의 실험 TV를 통해 비디오 아트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 전시에는 총체 피아노 랜덤 액세스 뮤직 같은 실험적 음악의 시도와 잘린 소머리 파괴된 누드 마네킹 보이스의 피아노 파괴 퍼포먼스 같은 파괴적 에너지의 설치 및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청년 백남준은 이러한 내용을 '동시성' '참여' '임의접속' 등등에 관한 16개의 테마로써 종합적인 큐레이팅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최근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점차 활발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1964 년 백남준은 일본을 거쳐 뉴욕으 로 이주했고, 1965년 소니의 포타팩(세계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으로 미국 뉴욕을 첫 방문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촬영하여 곧바로 그 영상을 카페 오 고고에서 방영했다. 이것이 미술사에서는 공식적인 비디오 아트의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첼로 연주자이자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의 기획자였던 샬럿 무어먼과 함께 비디오 아트와 음악을 혼합한 퍼포먼스 작업을 활발히 펼쳤다. 특히 1967년 음악에 성적인 코드를 집어넣은 백남준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에서 샬럿 무어먼은 누드 상태의 첼로 연주를 시도하다가 뉴욕 경찰에 체포되어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로 인해 예술 현장에서 누드를 처벌할 수 없다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TV 첼로> <TV 침대> 등등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많은 활동을 전개했다.

1974 년부터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설치 작업을 다양하게 진행했으며, <TV 부처>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TV 정원> <TV 물고기> 등등 많은 대표작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비디오 아트와 자연물을 음악적으로 혼합하여 테크놀로지로 물든 현대 사회의 새로운 생명력을 추구했다는 평판을 얻었다.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최된 백남준 회고전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가 뉴욕에 많이 알려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의 네트워크 방송국과 협력하여 자신의 비디오 아트를 방송했고, 이는 예술 세계의 영역 확장이었다. 나아가 1984년 1월 1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를 뉴욕 WNET 방송국과 파리 퐁피두 센터를 연결한 실시간 위성 생중계로 방송하여 전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위성 아트에는 로리 앤더슨,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앨런 긴즈버그, 이브 몽탕 등이 참여했으며, 전 세계 이천오백만명(재방송 포함)이 시청하였다. 이후에도 위성 아트 3부작으로 명명된 <바이 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 등이 이어졌다.

1993 년 백남준은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초대되어 최고 전시관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 전시에서 그는 북방 유라시아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칭기스칸의 복권> <마르크폴로> <스키타이의 왕 단군> <로봇 전사> <고대기마인물상> 같은 유목주의적 작품들을 다수 내놓았다.

1995 년 백남준은 제1회 광주 비엔날레 INFO art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한국 미술이 세계 진출을 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

2000 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세계>>라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으며, 이때 백남준은 레이저 아트 <야곱의 사다리> <삼원소> 등을 전시한 바 있다.

2006 년 1월 29일, 미국 마이애미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으며 유해는 서울, 뉴욕, 독일에 나눠서 안치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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