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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정~~~말 물 흐르듯 너무 빨리 지나가는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요.

지난 한해를 한개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감사" 입니다.


2013년에 여러분 모두 복 많이많이 받으세요 ^^

오랜만에 구글의 Doodle이 바뀐것을 확인햇는데, 오늘이 구글 14주년이라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구글 팬인데, 구글은 검색뿐만아니라, 메일, 문서서비스인 구글닥, 애드센스, 애드워즈 등등 참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서 너무나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글 소개 http://ko.wikipedia.org/wiki/%EA%B5%AC%EA%B8%80 



앞으로도 더욱더 발전해서 더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주시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항상 구글한테 고맙습니다.


참고로 구글에 더 상세히 알고 싶다면 구글 바이블이라는 책 강추합니다.


http://www.yes24.com/24/goods/7434429


클라라 조제핀 비에크 슈만(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 1819년 9월 13일 ~ 1896년 5월 20일)은 독일의 여류 피아니스트다.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로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고 어려서부터 천재 소녀 피아니스트의 명성을 얻었다. 집안의 반대를 물리치고 슈만과 결혼하여 남편의 작곡 활동을 도왔다.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피아노 재능을 보여 유럽에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남편과 브람스 음악의 해설자로서도 활약하였다. 한편 작곡 활동에도 힘썼다.

via Wikipedia




매 기념일마다 멋진 로고로 구글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구글 두들 팀을 만나보세요.
http://kr.iamvip.net/search/doodle


오늘의 구글 doodle은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 탄생 155주년이네요.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 Heinrich Rudolf Hertz, 1857년 2월 22일 - 1894년 1월 1일)는 독일물리학자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쓰는 주파수의 단위 헤르츠는 이 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헤르츠는 라디오파를 만들어 내는 장치를 만들어 전자기파의 존재를 처음 실증해 보였다.

헤르츠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가정이었으며,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의사의 딸이었다. 학창시절 과학과 언어에 재능을 보인다. 이 시절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기도 한다. 드레스덴, 뮌헨, 베를린의 대학에서 과학공학을 공부한다. 구스타프 키르히호프, 헤르만 폰 헬름홀츠 밑에서 공부를 한다. 1880년 박사 학위를 받고 1883년 킬 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자리를 얻을 때까지 헬름홀츠 밑에서 공부한다. 1885년에는 칼스루에대학교의 정교수가 되며 그곳에서 전자기파를 발견한다.

에테르가 없다고 밝혀낸 1887년의 마이켈슨-몰리 실험의 전조였던 1881년의 앨버트 마이켈슨의 실험 후에 그 실험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맥스웰 방정식을 다시 정리한다. 실험을 통해 전기 신호가 공기 중을 통해 전달될 수 있다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마이클 패러데이의 예견을 실증한다. 이는 무선통신을 발명하게 된 기초가 된다. 그는 또한 후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설명하게 되는 광전효과를 처음으로 발견한다. 광전효과는 물체에 주파수가 높은 빛을 비출 수록 전자를 잘 내놓는 현상을 말한다.

헤르츠는 독일 에서 사망한다.

그의 조카 구스타프 루트비히 헤르츠 또한 노벨상 수상자이고, 구스타프의 아들 카를 헬무트 헤르츠 또한 초음파검사를 발명한 과학자이다.

출처: 위키백과

오늘 2월7일이 찰스 디킨스 탄생 200주년이네요.

찰스 존 허펌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 1812년 2월 7일 - 1870년 6월 9일)는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영국 소설가이다.

화가 시모어의 만화를 위해 쓰기 시작한 희곡 소설 <픽위크 클럽>을 분책(分冊)으로 출판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그는 특히 가난한 사람에 대한 깊은 동정을 보이고, 사회의 악습에 반격을 가하면서, 사회에 대한 실제의 일들의 묘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완성했다. 후기 소설에는 초기의 넘치는 풍자는 약해졌으나, 구성의 치밀함과 사회 비평의 심화는 주목할 만하다. 그의 작품으로 자전적 요소가 짙은 <데이비드 커퍼필드> <위대한 유산> 등을 비롯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의 이야기> 등이 있다. [1
출처: 위키 백과


오늘의 구글 Doodle은 로버트 노이스 탄생 84주년에 관한 것이네요.

"실리콘 밸리의 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고든 무어와 함께 인텔을 창업하고, 1968년부터 75년까지 CEO를 역임했던 로버트 노이스(Robert Norton Noyce, 1927. 12. 12. – 1990. 6. 3.)의 생일 기념. 실리콘 소재의 직접 회로(IC)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고든 무어(Gordeon Moore, 1929. 1. 3. -)와 함께 인텔을 만들 때 원래 회사 이름이 이 둘의 이름을 따 "Moore Noyce Electronics(MN Electronics)"로 정했으나, 많다라는 의미의 "More"와 잡음이라는 "Noise"가 연상되어 결국. "Integrated Electronics Corporation"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이를 줄여 "Intel"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의 Google Doodle은 마리 퀴리 탄생 144주년입니다.

마리아 스쿼도프스카 퀴리(Maria Skłodowska-Curie, 1867년 11월 7일 ~ 1934년 7월 4일)는 프랑스식 이름인 마리 퀴리(프랑스어: Marie Curie)로 잘 알려진, 폴란드 바르샤바 출생의 방사능 분야의 선구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이다.

생애

왼쪽부터 마리아, 아버지 블라디슬라프, 브로니슬라바, 헬레나

성장과정

1867년 바르샤바에서 가난한 교육자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 브로니슬라바는 중학교 교사, 아버지 블라디슬라프는 바르샤바 교육청 장학사였으며, 형제로는 오빠 조지프(1863년생)와 조피아(1862년생)[1], 브로니슬라바(1865년생)[2], 헬레나(1866년생)[3] 언니 셋이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혼란스러웠는데, 폐결핵을 앓던 어머니와의 사별, 장학사로 일하던 아버지의 실직[4], 큰 언니 조피아의 요절[5]로 혼란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유학

여학교를 졸업한 마리는 남학생만 뽑는 바르샤바 대학교와는 달리, 성차별이 없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싶어했으나 학비가 없었기 때문에, 3년간 시골의 부유한 농가의 가정교사로 고용되어 고용주의 동갑내기 여식과 아들을 가르쳤으며, 나중에는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운영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소년감화원 사감으로 취직하여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마리는 둘째 언니 브로냐와 형부 가지미르 부부가 의사로 일하고 있던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였다. 브로냐와 마리가 교육을 강조함으로써 폴란드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려는 계몽주의자들이었다면, 형부 가지미르는 자본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없이는 민중해방이 없다는 냉철한 현실이해를 주장한 사회주의자였다.[6]

교수생활

소르본 대학교에서 물리학수학 학위를 취득한 그녀는 독학으로 과학자가 된 피에르 퀴리결혼, 두 딸을 둔 어머니가 되었다. 퀴리라는 (姓)은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딴 것이다. 1906년 남편의 사별(교통사고)로 과부가 된 그녀는 남편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소르본 대학교에서 11월 5일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계몽사 전기에 의하면 퀴리는 미리 강의내용을 확인하는 준비를 하여 남편이 가르친 내용을 이어서 강의하는 꼼꼼함을 보여주었다. 이 일로 그녀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에서는 연금을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거부했다. 그녀의 두 딸 이렌이브는 어른이 된 후 각각 과학자음악가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때에는 정확한 수술부위를 찾을 수 있는 엑스레이 기술로 군의관들이 수술을 도움으로써 부상한 군인들의 목숨을 구했다. 마리는 방사능 물질인 라듐을 발견했는데, 문제는 그가 살던 시대에 방사능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라듐은 미용은 물론 정신장애 치료에까지 효과가 있다는 위험한 선전이 아무런 근거없이 주장되었고,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이 죽어갔다. 퀴리도 1934년 요양소에 입원하여 그 해 7월 4일 방사능으로 인한 악성 빈혈로 죽었다.

업적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파리의 연구실에서, 1907년 이전

그녀와 그 가족은 역사에 이름을 떨쳤다. 1903년 라듐연구로 그녀와 남편 피에르 퀴리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1907년에는 라듐 원자량의 정밀한 측정에 성공하였다. 1910년에는 금속라듐의 분리도 하여, 1911년에는 라듐 및 폴로늄의 발견과 라듐의 성질 및 그 화합물 연구로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공적을 기려 방사능 단위에 퀴리라는 이름이, 화학 원소 퀴륨에 이름이 사용되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며,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노벨상을 2회 수상한 기록은 라이너스 폴링과 함께 인물로서는 최다 기록이다(단체로서 적십자 국제위원회가 3회 수상하였다). 또, 그녀의 딸 부부(이렌 졸리오퀴리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프랑스의 보수성과 가십을 좋아하는 언론의 공세('남편의 애제자 폴 랑주뱅과 연애관계이다'라는 기사가 났음)과 폴란드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여성이라는 성차별적 문제로 결국 화학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없었다.

출처: 위키백과


오늘 구글 Doodle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사원, 일명 성 바실리 대성당이라고도 불립니다.

성 바실리 대성당(러시아어:Храм Василия Блаженого 하람 바실리야 브레제노고)은 모스크바붉은 광장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이 성당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황제였던 이반 4세가 러시아에서 카잔 한국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며 봉헌한 성당으로 1555년 건축을 시작하여 1560년 완공하였는데 이반 4세는 완공된 성 바실리 대성당의 모습에 반해 이런 아름다운 건물을 두 번 다시는 못 짓게끔 건축을 담당했던 바르마와 보스토니크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하며 러시아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성 바실리 대성당은 47미터 되는 팔각형의 첨탑을 중앙으로 하여 주변에 8개의 양파 모양의 지붕들이 배열되어 있으며 예배당을 형성하는 4개의 다각탑과 그 사이 4개의 원형탑이 솟아 있어 총 9개의 탑이 있다. 탑들은 서로 무질서하게 배열되어 있으나 그 곳에서 조화로움이 보인다. 테트리스 시작시 배경에 나오는 건물도 이 성 바실리 대성당이다. via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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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세계 박락회 160주년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구글에서도 새로운 Doodle을 선보였습니다.



세계 박람회(한자世界博覽會World's Fair)는 19세기 중반부터 열린 대규모 박람회를 말한다. 국제박람회기구(BIE, 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에서 주관한다. 흔히 엑스포(Expo (exposition - 전시회의 줄임말)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만국 박람회(萬國博覽會, Universal Expositions)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더이상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대신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해 다루는 등록 박람회(Registered Expositions)와 보다 제한되고 분명한 주제를 가진 인정 박람회(Recognized Expositions)로 나누고 있다.

등록 박람회는 보통 6주에서 6개월까지로 개최기간이 길며, 5년 주기로 개최하게 되어 있다. 반면 인정 박람회는 개최 기간이 3주에서 3개월로 짧고, 등록 박람회 사이에 개최를 원하는 나라에서 유치해 열게 된다. 그리고 등록 박람회의 전시관은 참가국에서 부담해 설치하지만, 인정 박람회에서는 주최국이 건축해서 참가국에 무상 임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2000년 하노버 세계 박람회2005년 아이치 세계 박람회등록 박람회지만, 1993년 대전 세계 박람회2012년 여수 세계 박람회인정 박람회이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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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편집]

성 밸런타인데이의 유래에 대해서는 로마교회성 밸런타인 주교가 군인들의 군기문란을 우려하여 남자들을 더 많이 입대시키기 위해 결혼을 금지하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배성사를 집전했다가 순교한 날인 2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한 축일이라는 주장과 서양에서 들이 교미를 시작하는 날이 2월 14일이라고 믿은데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세계 각지에서 이날은 남녀가 서로 사랑을 맹세하는 날로써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역사 [편집]

초콜릿을 보내는 관습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의 밸런타인 초콜릿 광고를 시작으로 “밸런타인데이 =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라는 이미지가 일본에서 정착되기 시작했으며 1960년 일본 모리나가 제과가 여성들에게 초콜릿을 통한 사랑고백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여성이 초콜릿을 통해 좋아하는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써의 일본식 밸런타인데이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모리나가 제과는 밸런타인데이에 남성도 좋아하는 여성에게 초콜릿을 주자라는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하여 초콜릿상표 인쇄가 거꾸로 새겨진 이른바 〈逆초코〉시리즈를 발매하기 시작했다.

via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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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Google Doodle은 플린스톤 50 주년.


시놉시스
둘도 없는 친구인 프레드 플린스톤과 바니 러블은 공룡 기중기 학교를 졸업하여 '베드 락'에 취직한다. 윌마 슬래우플은 지도자이자 대지주인 슬패우플의 상속녀이지만,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그녀의 어머니와는 달리 자신의 삶이 무미건조하고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베드 락'의 록펠러 사장과 결혼이 결정된 상태. 록펠러는 프린스톤 대학을 나온 인재에 케디록을 몰고 다니는 갑부지만 윌마에게는 지금까지 봐왔던 사람 중에 하나일 뿐이다.

고민 끝에 가출을 단행한 그녀는 '베드록'에서 베티 오세일을 만나는데, 둘은 멜록 팰리스에서 살면서 '브론토 킹'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윌마와 프레드는 황당한 첫 데이트를 치른 후에 사랑에 빠지고 그 사이에 베티와 바니 역시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두 커플은 '록 베가스'로 로맨틱한 주말 여행을 떠나는데, 윌마와 결혼하여 그녀 집안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록펠러는 록 베가스의 쇼걸인 록시를 동원하여 프레드와 윌마를 갈라놓을 계획을 꾸민다.
출처: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id=6160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구글은 저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매일 구글 검색, 지메일, Gtalk 등등의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습니다.


구글 12주년 완전 축하합니다!!

구글(Google)은 인터넷 검색 엔진의 하나로, 1998년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처음 만들었다. '구글'이라는 이름은 칼 세이건이 언급했던 10100을 뜻하는 구골이란 단어를 잘못 표기한 것에서 유래되었다.[1] 구글은 미국 전체 인터넷 검색의 2/3를 전 세계의 70%를 장악했다. 구글의 인텍스에는 2008년 기준 1조 개의 웹페이지가 저장되어 있고, 네 시간마다 국회도서관 전체 분량과 동일한 양에 인덱스를 달았다. 2009년 초, 사용자들은 하루에 수십 억 개 페이지를 클릭해서 접속했다 나갔고, 날마다 수백억 개의 광고 문구에 노출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오랜만에 구글 코리아가 Doodle을 선보였군요.

오늘은 다름 아닌 백남준 탄생 7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백남준(白南準, 영어:Nam June Paik, 1932년 7월 20일~2006년 1월 29일)은 대한민국 태생의 미국 현대 미술가이다. 여러가지 매체로 예술 활동을 하였다. 비디오 아트를 만들고 발전시켰다고 평가된다.

2000 년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받았다.

1932 년 7월 20일 경성부 서린동에서 아버지 백낙승과 어머니 조종희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백남준은 수송국민학교 경기보통중학교를 다니면서 피아니스트 신재덕에게 피아노 연주를, 작곡가 이건우에게 작곡을 각각 배웠다. 1949년 그는 홍콩 로이덴 스쿨로 전학했으며,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가족이 일본으로 이주했다. 그 후 일본으 로 건너간 그는 1952년 도쿄 대학교 문과부에 입학했다. 2년 후, 미학 및 미술사학 으로 전공을 정하고, 주로 작곡음악사를 공부했다. 졸업 논문은 <<아르놀트 쇤베르크 연구>>이다.

1956년 백남준은 독일 유학을 떠나 뮌헨 대학교쾰른 대학교 등에서 서양의 건축, 음악, 철학 등을 공부하였다. 뮌헨 대학교 입학 1년 후에는 프라이부르크 고등음악원으로 옮겨 볼프강 포르트너 교수에게 배우지만, 곧 현대음악의 실험이 활발하던 다름슈타트 하기 강좌에 참여했다. 1958년 그 곳에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 그의 자유로운 음악적 실행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1950년대 말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한 독일 라인 지역의 음악 퍼포먼스의 장에서 백남준은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앨런 카프로)라고 불릴 정도의 탁월한 퍼포머로 활약했다. 1959년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바이올린을 파괴하거나(바이올린 솔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버린 퍼포먼스(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가 특히 유명하다. 1961년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음악 퍼포먼스오리기날레에서 머리와 넥타이로 잉크를 묻혀 두루마리에 흔적을 남기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1960년대 초반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등을 만나 플럭서스 활동을 전개했다. 다다이즘에 영향을 받은 플럭서스는 헤라클레이투스가 주장한 '변화 생성의 흐름'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이벤트와 퍼포먼스 그리고 음악에 주력했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백남준은 슈토크하우젠이 중심이 된 쾰른의 WDR 전자음악 스튜디오에 출입했으며, 특히 레이더와 TV 작업에 몰두했던 독일 작가 칼 오토 괴츠의 영향을 받아 2년여 동안 홀로 TV 실험에 착수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자신의 첫 번째 전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열었으며, 13대의 실험 TV를 통해 비디오 아트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 전시에는 총체 피아노 랜덤 액세스 뮤직 같은 실험적 음악의 시도와 잘린 소머리 파괴된 누드 마네킹 보이스의 피아노 파괴 퍼포먼스 같은 파괴적 에너지의 설치 및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청년 백남준은 이러한 내용을 '동시성' '참여' '임의접속' 등등에 관한 16개의 테마로써 종합적인 큐레이팅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최근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점차 활발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1964 년 백남준은 일본을 거쳐 뉴욕으 로 이주했고, 1965년 소니의 포타팩(세계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으로 미국 뉴욕을 첫 방문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촬영하여 곧바로 그 영상을 카페 오 고고에서 방영했다. 이것이 미술사에서는 공식적인 비디오 아트의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첼로 연주자이자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의 기획자였던 샬럿 무어먼과 함께 비디오 아트와 음악을 혼합한 퍼포먼스 작업을 활발히 펼쳤다. 특히 1967년 음악에 성적인 코드를 집어넣은 백남준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에서 샬럿 무어먼은 누드 상태의 첼로 연주를 시도하다가 뉴욕 경찰에 체포되어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로 인해 예술 현장에서 누드를 처벌할 수 없다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TV 첼로> <TV 침대> 등등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많은 활동을 전개했다.

1974 년부터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설치 작업을 다양하게 진행했으며, <TV 부처>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TV 정원> <TV 물고기> 등등 많은 대표작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비디오 아트와 자연물을 음악적으로 혼합하여 테크놀로지로 물든 현대 사회의 새로운 생명력을 추구했다는 평판을 얻었다.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최된 백남준 회고전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가 뉴욕에 많이 알려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의 네트워크 방송국과 협력하여 자신의 비디오 아트를 방송했고, 이는 예술 세계의 영역 확장이었다. 나아가 1984년 1월 1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를 뉴욕 WNET 방송국과 파리 퐁피두 센터를 연결한 실시간 위성 생중계로 방송하여 전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위성 아트에는 로리 앤더슨,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앨런 긴즈버그, 이브 몽탕 등이 참여했으며, 전 세계 이천오백만명(재방송 포함)이 시청하였다. 이후에도 위성 아트 3부작으로 명명된 <바이 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 등이 이어졌다.

1993 년 백남준은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초대되어 최고 전시관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 전시에서 그는 북방 유라시아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칭기스칸의 복권> <마르크폴로> <스키타이의 왕 단군> <로봇 전사> <고대기마인물상> 같은 유목주의적 작품들을 다수 내놓았다.

1995 년 백남준은 제1회 광주 비엔날레 INFO art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한국 미술이 세계 진출을 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

2000 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세계>>라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으며, 이때 백남준은 레이저 아트 <야곱의 사다리> <삼원소> 등을 전시한 바 있다.

2006 년 1월 29일, 미국 마이애미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으며 유해는 서울, 뉴욕, 독일에 나눠서 안치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오늘 구글 Doodle은 차이코프스키 탄생 170주년입니다.


트 르 일리야비치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작곡가로 우랄지방의 캄스코보트킨스크 출생했습니다.
상 트페테르부르크의 제립(帝立)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관리가 되었다가, 1860년 안톤 루빈스타인이 주재한 음악교실에 입학, 이 교실이 러시아 최초의 음악원으로 개편되면서 제1기생이 되었습니다.
그 뒤 모스크바음악원이 설립되자 교관(1866∼78)이 되었으나, 77년 이전부터 러시아 철도왕(鐵道王)의 미망인 폰 메크 부인(1831∼1894)으로부터 연금을 받아왔기 때문에 곧 교직을 떠나 창작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얼마 후 교향곡 제4, 5, 6의 3곡을 완성하고, 93년 10월에는 제6교향곡을 완성 초연하였는데, 그날로부터 며칠 후인 11월 콜레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18세기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쳐 성립된 러시아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으로 볼 수 있으나, 낭만파의 수법을 초월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또한 러시아악파의 특징으로 되어 있는 변박자(變拍子)와 민요의 사용도 극히 상식적인 것이었고, 비조리성(非條理性)과 논리의 비약이 없어 서유럽에서는 높이 평가되지 못하고, 속류(俗流)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그의 작품의 역사적 의의를 찾아보면, 약 40년간에 걸친 창작활동 중에는 시민세대의 음악의 기점(基點)과 종말이 있었고, 19세기 후반의 러시아악파의 중요한 일익을 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법상 피아노와 바이올린에서 대단한 진보를 보였음은 물론, 이것이 고전적인 작풍과 서로 작용하여 그의 음악에 신선하고 쉬운 영상(影像)을 심어줌으로써 차이코프스키음악의 독특한 매력을 지탱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에는 표제음악적(標題音樂的)인 색채가 짙습니다.
무대음악은 별도로 하더라도, 교향작품의 거의 대부분이 표제적인 의도를 포함하고 있어 사상성이 매우 강합니다. 특히 교향시 '만프레드 교향곡(manfred Symphony)'(85)은 문학적 사고가 깊은 작품으로 유명하며, 그의 오페라 가운데서도 푸슈킨의 원작을 대본으로 한 것은 상트페테르부르크파의 역사주의와는 반대로 동시대의 증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1854년 14세 때의 '왈츠'에서 시작하여 93년에 완성된 교향곡 제6번 '비창'(작품 74)으로 끝났습니다.
작품 74는 자신이 붙인 번호이고, 그 후의 보주(補註)로 80, 이 밖에 번호 없는 초기의 소 품이 약 20곡 현존합니다.
즉 교향곡 6곡, 미완성의 교향곡 1곡, 교향시 1곡, 오페라 11곡, 발레곡 3곡 이외에도 다수의 실내악곡, 피아노곡, 가곡 및 협주곡 등이 있습니다.
그의 창작활동은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를 그만 둔 시기(78)를 중심으로 2기로 나눌 수 있 습니다. 전기는 교직과 비평에 종사하였던 시기로서 작품의 경향도 낭만적인 향취와 피아노 협주곡 제1번(75)과 바이올린협주곡(78) 등에서 볼 수가 있는 현란한 색채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후기는 제4번(77) 이후 3곡의 교향곡, 그리고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78)을 포함하여, 모두가 충실한 창조력과 기법의 완결을 상기시킵니다.
이 두 시기 사이에는 그의 불행한 결혼문제가 개재되어 있어 그의 작풍변화의 중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교향곡 중에서는 전기의 것 중 제2번(72)이 소러시아민요에서 취재한 것으로 가장 유명합니다.
제4 번 이후의 3곡의 교향곡들은 단일 모티프인 이른바 ‘숙명의 동기’에 의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 3곡을 일련의 곡으로 보려는 견해도 있습니다. 발레음악에서는 '백조의 호수(Swan Lake)'(76), '잠자는 숲 속의 미녀(The Sleeping Beauty'(89),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92)의 3곡 중 특히 '백조의 호수'가 장대한 짜임새와 다채로운 음악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오페라에서는 푸슈킨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예브게니 오네긴'과 '스페이드의 여왕'(90)이 유명합니다.
특히 전자는 러시아문학사에서 등장하는 오네긴을 주인공으로 하여, 러시아적인 인간상의 애환을 깊이 있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또 그의 방대한 작품들 중에서 실내악은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3곡의 현악4중주곡(1871, 74, 76)은 보로딘, 타네예프의 작품과 더불어 러시아악파의 훌륭한 소산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저작으로 '화성학 개요'(75)가 있습니다.

square30_yellow.gif 주요 작품

circle05_yellow.gif 교향곡 ; '만프레드 교향곡', '현악4중주곡(1871, 74, 76)', '제 1 ~ 6 교향곡(비창)',
circle05_yellow.gif 오페라 ; '예브게니 오네긴', '스페이드의 여왕'
circle05_yellow.gif 협주곡 ; '피아노 협주곡 제 1 번', '바이올린 협주곡'
circle05_yellow.gif 발레음악 ;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circle05_yellow.gif 저작 ; '화성학 개요'

 


출처: http://hishkim.com.ne.kr/l/comp/tchaikovsky.htm
  1. Favicon of http://cosmopolitan815.tistory.com/ BlogIcon cosmopolitan815 2010.05.10 01:28 신고

    구글 화면 바뀌는 날은 다 무슨 이유가 있는 거군요..

    저 그림이 차이코프스키를 뜻하는지는 몰랐다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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